광복 80주년, 시대의 등불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다시 만나다
광양 망덕포구, 정병욱 가옥에 살아 숨 쉬는 친필 유고… 시인을 지켜낸 우정과 기억의 공간
오는 제80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광양 망덕포구에는 한 시인의 순결한 시심(詩心)이 다시 한 번 깊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의 억압 속에서도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삶을 노래했던 윤동주. 그가 남긴 친필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오늘날까지도 우리 민족의 아픔과 희망을 상징하는 영혼의 언어로 살아 있다.
1941년 겨울, 시대를 응시한 시인의 고뇌
1941년 늦가을,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전 세계가 전쟁에 휩싸이던 때. 연희전문학교 졸업을 앞둔 윤동주는 시집 출간을 꿈꾸며 자화상, 별 헤는 밤, 쉽게 씌어진 시 등 18편의 시와 ‘서시’를 원고지에 또박또박 옮겨 적었다. 그리고 그는 이 19편의 시를 친필로 묶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을 붙였다.
손수 제본한 시집은 단 3부. 한 부는 자신이 간직하고, 또 한 부는 은사 이양하 교수에게, 나머지 한 부는 각별히 의지했던 연희전문 후배 정병욱에게 전했다. 하지만 시대는 시인의 꿈을 허락하지 않았다. 검열을 우려한 출판은 무산됐고, 윤동주는 1943년 일본 유학 중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돼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는 광복을 불과 6개월 앞둔 1945년 2월, 스물일곱의 나이에 옥중에서 생을 마감했다.
“내 생애 가장 자랑스러운 일은 동주의 시를 지킨 것”
윤동주의 시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정병욱의 신념과 어머니의 손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학병으로 강제 징집된 정병욱은 윤동주로부터 받은 시집을 어머니께 맡기며 꼭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어머니는 시집을 명주보자기에 싸서 항아리에 담아 마루 아래에 숨겨 두었다. 이 시집은 해방 이후 1948년, 정식으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출간되었고, 윤동주는 마침내 무명에서 시인으로 되살아났다.
정병욱은 생전에 “내 평생 해낸 일 가운데 가장 자랑스럽고 보람 있는 일은 동주의 시를 지켜 세상에 알린 일”이라며, 윤동주의 시 ‘흰 그림자’(백영白影)를 자신의 아호로 삼았다.
기억의 공간, 광양 망덕포구에서 시인을 만나다
오늘날 광양의 망덕포구에는 윤동주의 친필 유고를 품은 ‘정병욱 가옥’(등록문화유산 제341호)이 보존되어 있다. 항아리에 담겨 마루 밑에 숨겨졌던 당시의 상황은 전시를 통해 생생히 재현돼 있으며, 가옥 건립 100주년을 맞은 올해 그 의미는 더욱 깊다.
정병욱 가옥 인근 500여 미터 거리에 조성된 ‘윤동주 시 정원’에는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 등 윤동주의 시들이 돌 위에 새겨져 방문객을 맞이한다. 또한, 망덕포구와 배알도 섬을 잇는 ‘별 헤는다리’, ‘동주카페’, ‘별헤는강’ 등 윤동주의 시를 모티브로 한 공간들도 하나둘 늘어나고 있다.
광양, 윤동주의 시 정신을 품은 도시로
광양시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중심으로 윤동주의 정신을 계승하는 관광브랜딩을 강화하고 있다. 윤동주의 삶과 문학을 기억하는 국내외 관광객을 위해 테마관광상품을 운영하는 여행사와 개별 방문객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정병욱 가옥과 시 정원을 연결한 문화 탐방 코스를 확대하고 있다.
이현주 광양시 관광과장은 “윤동주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 없이 살고자 했던 시인이자, 오늘의 우리가 광복절을 기리는 진정한 이유를 되새기게 해주는 존재”라며 “광양은 그 정신을 간직하고 실천하는 공간이자, 윤동주의 시가 살아 숨 쉬는 도시로 성장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시대를 비추는 별 하나, 광양에서 빛나다
제80주년 광복절을 맞는 2025년,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단순한 시집을 넘어, 민족의 정체성과 시대의 양심을 상징하는 유산으로 우리 곁에 있다. 그리고 그 시를 지켜낸 우정의 집, 광양 망덕포구의 정병욱 가옥은 오늘도 조용히 말한다. 시인은 죽었지만, 그의 시는 여전히 별빛처럼 우리를 비추고 있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