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염불을 하더라도 하는 마음이 없이 염불을 해
그러나 그건 타협 안 하는 것이거든. 그걸 끌어안아
귀로 소리를 들어도 소리와 타협을 하지 마라
그 소리를 끌어안아
그러니 설법이란 것은 뭣이냐 할 테면 말이지 번뇌라든지 모든 마음 씀씀이라든지 이걸 나투었어. 나투었으니 이걸 갖다가 살기 위한다든지 그래서 거기서 어떻게 하면 잘 되겠나. 여기서 일어나는 거에요. 그러나 잘 되고 안 되고는 인을 심고 결과를 봐야 되는데 인은 심지 않고 잘 된 결과만 보려고 하면 되느냐 말이여. 안와 그래도 여러분들 여기 와서 같이 일주일 동안에 공부하는 것도 이거 결과거든. 그러하면 여러분들 여기에 대한 인은 심기어졌어요. 그만 공연히 온 거 아니에요.
그러하기 때문에 사실로 이 법, 무식한 사람에게 말했자 먹혀들지 않습니다. 번뇌 니가 일으킨다 잔뜩 곤란해 지금 번뇌 처지가 곤란해 처지가 곤란해지는 것도 자기가 만든 것이거든 실에 있어서는. 자기가 만든 줄도 모르고 자기 욕심대로, 일은 하기 싫고 모든 것이 자꾸 쓸데없는 일만 해. 쓸데없는 생각을 가지면 쓸데없는 과가 딱 나타나는 건 사실이라요. 그렇게 말해도 안 믿어요, 그러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부처님이 천만 명 있어도 제도 못하는 원인이 여기 있습니다.
그러니 문제는 죽어도 내가 죽고 살아도 내가 산다는 이 생각을 갖다가 우리가 철저히 할 수 있다면은 난다 하는 것도 하나의 과. 인이 있기 때문에 과가 나타나. 죽는다 하는 것도 하나의 과 아니겠어요 이것도 역시 인이 있어서 이렇게 되는 건데 이거 전부 다, 전부가 다 내가 일으켜서 내가 하는 거다 이 생각을 가지면 근본적으로 그 과를 위해서 좋은 인을 심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이거 잘 안 됩니다. 뻔히 알고도 안돼. 이까짓 거 조금 하는 것. 이까짓 거 좀 이래 하는 것, 이것도 인이 되는 거예요. 어느 것 인 아닌 것이 없습니다. 내가 여기 와서 이런 얘기 하고 있습니다, 이거 인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면 누가 거부 안 할 겁니다. 이거 인 아니에요 여러분이 내 말을 들어. 이거 인이 되는 거예요.
이 말을 잘 알아들으면 알아듣는 대로 과가 나타날 것이고 잘 알아듣지 못하면 알아듣지 못하는 대로 과가 나타날 겁니다. 설법이란 꼭 같은 말을 하는 겁니다. 부처님이 팔만대장경이 있다 하더라도 해도 결국 마음 심자 하나 설명한 겁니다. 마음 심자 하나도 설명을 다 못 했어 부처님이. 그러기 때문에 어떻든 마음 심자 하나를 설법하는데 정법으로도 설법을 하고 무정법으로도 설법을 해. 그 사람의 근기에 따라서 이래 하는 겁니다.
그러하니 여러분들, 오늘은 어떻게 하냐면 여러분이 번뇌 망상을 한번 일으키라 그 말이에요. 안 일으키더라도 이놈의 번뇌 망상아, 나오너라 하고 일으켜 봐요. 일으켜 보면 아, 내가 참말로 번뇌 망상을 일으키는구나 하는 걸 알게 돼요. 그러나 보통 근기가 약한 사람들은 모릅니다. 몰라. 그만 갑갑해. 그런데 할 일이 있거든. 할 일이 뻔히 있어도 눈에 안 봬. 그러니까 사람이란 천층만층이여. 하니까 오늘은 여러분들이 한번 번뇌를 일으키는 방향으로 가 봅시다.
그리고 망상도 한 번 부려 봅시다. 망상도 잘 부리면 참 멋진 거여. 망상을 떡 부리다가 그만 보면 망상을 부릴 때는 망상이 있는데, 망상을 안 부릴 땐 망상이 없네. 아, 이거 봐라. 이거 어쩐 일인고 이렇게 됩니다. 결국은 내가 그리 일으키고 내가 망상을 짓고 내가 없애기도 하고 하는구나. 재미가 나. 그러면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 되냐 하면 망상을 또 한 번 부려봐. 오, 이것이 망상이 아니라 진심에서 오는 구나 이걸 알게 돼. 진심, 역시 그것이 그거고 그것이 그거구나. 이걸 알게 돼.
그리 알아놓으면 말이지 천하에 겁날 것이 없어. 그렇다고 해서 무슨 나쁜 일 하라는 것도 아니고. 또 나쁜 인을 만들 필요도 없어. 결국은 좋은 일 하게 되는데 말이지. 얼마든지 좋은 인을 심을 수가 있어. 과 오는 건 나중의 일이고. 좋은 인을 심을 수가 있어. 그러니까 일거일동이 전부 다 인을 심고 과가 됩니다. 그 과가 또 인이 되고 이리 되는 겁니다.
물론 여러분들이 잘 아시겠지만 좌우간 얘기하겠습니다. 여러분의 권리 중에 당당한 권리가 하나 있습니다. 나는 권리. 그런데 아무 것도 모른 사람들은 내가 났는지 그걸 몰라. 한 여남은 살 먹어야 아 내로구나 이걸 알아. 나는 줄 몰라. 모른 건 모른 데 돌려 버려. 모르면 모른 데로 돌려 버리면 내하고 아무 상관이 없어. 모르든 알든 간에 나는 날 권리가 있어. 어째 그러느냐. 이 세상에 나게 된다면은 어떻게 되느냐 하면 말이지, 전 세상에서 지은 인연대로 나는 겁니다.
만약 지금 세상에 우리가 후 세상에 또 날 것 아니겠어요 또 이 몸 버릴 것 아니겠어요 그러면 지금 여러분들이 지은 그대로 가서 나게 돼. 그러니까 여러분들은 이 자리에 있어서 현재와 과거와 미래를 알 수 있어. 현재 이걸. 이 몸을 나툴 수 있는 인을 지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여. 그러면은 전생 알았어. 그래도 나는 말이지 공부를 한답시고 애를 많이 썼다 말이여. 그것이 인이 돼서 이 자리에 앉아 있다 이것이 결론이여. 그럼 전 세상 인 아는 거 아니겠어요
그다음엔 장래는 어떻게 되느냐. 지금 현재 내가 공부한다고 애를 써. 그러면 요것이 과가 돼. 그럼 후 세상 아는 거 아니겠어요 우선 이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는 허공이 이것이 과거 현재 미래가 없다 이 말보다도, 이건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지만 지금 여러분의 과거를 알려면 지금 현재를 알면 과거를 알 수가 있어. 또 미래를 알라면 지금 현재를 걷어잡고 생각하면 미래를 알 수가 있거든. 왜 그러느냐. 지금 미래를 위해 인을 심고 있거든. 인을 심고 있는데 이 인이 다른 데로 벗어나겠나요. 벗어나는 법이 없어. 벗어날 수도 없어. 요것이 인과 관계라.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우리가 절대성 자리가 나라는 걸 여러분이 알았다 말이지. 절대성 자리라는 것은 말이지 빛깔도 소리도 냄새도 없다는 걸 알아. 그러면 우리의 몸을 나투는 것도 상대성으로 나퉈. 일을 하는 것도 상대성 놀이다. 공부를 하는 것도 상대성 놀이 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불법도 상대성 놀음이거든. 그러하니 이걸 우리가 알았다 말이지. 그러면 상대성 놀이는 실답지 않다는 걸 여러분은 알고 있지 않아요 그렇다면 이건 실답지 않은 가짜라. 절대성 자리는 진짜라. 이걸 갖다가 잊어버리지 말고 모든 일을 행하는데 있어서 이렇게만 닦아 나가면 문제 해결이 됩니다. 나름대로 문제가 해결이 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눈으로써 경계를 봐. 경계를 보는데 타협을 하지 말아요. 사람을 본다든지 나무를 본다든지 또 사회에 무슨 일을 한다든지 타협을 하는 것이 아니여. 타협은 내 마음을 속박 들내서 말이지 이건 좋다 나쁘다 시비를 하는 이것이거든. 눈으로써 경계를 보되 타협을 하지 않아. 그러나 그 경계를 끌어안아. 그 경계를 끌어안아. 배척을 할 필요가 없어. 와 배척을 할 필요가 없느냐. 그거 다 절대성의 놀음놀이거든. 그러나 경계, 이것도 물론 절대성에서 온 것이지만 실답지 않은 것이라 말이여. 그러하기 때문에 타협을 하지 말란 거예요.
여러분들이 염불을 해. 염불도 타협하는 거여. 타협을 하지만 말이지 그 염불을 놓지 안 해. 놓지 안 해. 그러하면 참말로 진 염불이 되는 거예요. 아, 나는 오늘 염불 십만 번 했으니 내 이만침 하면 됐다 오늘 만 번 했다 이만침 하면 됐다. 그거 타협하는 거예요. 내가 염불을 하더라도 하는 마음이 없이 염불을 해. 그러나 그건 타협 안 하는 것이거든. 그걸 끌어안아. 염불을 해도 타협을 안 하는 것이거든. 귀로 소리를 들어도 소리와 타협을 하지 마라.
그러나 그 소리를 끌어안아. 만약 소리하고 타협을 하지 말라 한다고 해서 무슨 소리가 나. 나는 못 들은 척한다. 그건 타협 이상의 타협이에요. 그 소리를 들어. 그러나 그 소리와 타협을 해서 이러쿵저러쿵 할 필요가 없어. 그러나 그걸 끌어안아. 코로 냄새를 맡아. 냄새를 맡더라도 타협을 하지 않아. 그 냄새와 타협을 하지 않고 그걸 끌어안아.
김성학 기자(bultopnew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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